미드 워킹데드의 시즌 8 방영을 기념해 지금까지 읽은 워킹데드 정식 번역판에 대한 리뷰를 조금 길게 써본다.
2003년에 처음 나온 워킹데드 그래픽노블은 TV 판권이 팔리기 전에 이미 덕후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 몰이를 하고 코믹콘에서 최고의 시리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28권까지 나왔고 내년 3월에 29권이 출간될 예정이지만 한국 정식 번역판은 지난 2014년에 나온 15권에서 멈춰 있다.
미드가 예전의 기세를 보인다면 한국판도 더 나올 가능성이 있겠지만 시즌이 늘어날수록 전개가 점점 망테크를 타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요원하다.
워킹데드 1권과 후속권의 작화를 보면 꽤 큰 차이가 있는데, 토니 무어(Tony Moore)가 작화를 담당한 1권은 전형적인 그래픽노블 스타일에 가깝고 찰리 아들라드(Charlie Adlard)로 변경된 2권부터는 선이 굵은 극화 스타일이 두드러진다.
1권에서 주인공 릭이 글렌과 만나는 장면이다.
위는 15권에서 릭이 글렌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둘 다 동일한 캐릭터지만 스타일 차이가 두드러진다. 처음에는 이런 작화 변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익숙해지다 보니 뭔가 암울한 워킹데드 내의 세계관과 잘 맞는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픽노블과 미드 버전은 소소한 에피소드(예: 유명한 애틀랜타 탱크 장면과 CDC 에피소드)가 다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주제 의식과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이다.
액션 신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외부의 다양한 요소와 투쟁하는 모습에 집중하는 미드와는 달리 그래픽노블은 자신과의 싸움 및 내부의 갈등에 더 집중한다. 가장 큰 주제 중 하나는 리더십인데, 과연 특정 캐릭터가 리더가 될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에서부터 좋은 리더란 어떤 리더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민거리를 던져 준다. 이러한 내부적 갈등에 의해 생존자들이 이합집산하며 잠시 다른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역시 큰 차이를 보이는데 미드 버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로리와 안드레아다. 특히 초반 시즌이 방영될 당시에 레딧과 같은 해외 포럼에 이 두 캐릭터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성토글이 자주 게시될 정도로 걸림돌이 되는 캐릭터였는데 원작인 그래픽노블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로리의 경우 단순히 요구사항만 늘어놓으며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라 아니라 복잡한 가정사와 주변 환경 때문에 점차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며 괴로워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안드레아 역시 미드에서 전형적인 욕받이용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그래픽노블에서는 명사수이자 일행을 결합시키는 아교풀과도 같은 역할을 해낸다. 일단 15권까지는 워킹데드 내에서 가장 강인하고 의지할 수 있는 캐릭터 중 한 명이다.
내가 미드를 손에서 놓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과도한 폭력(특히 매우 역겨운 방식으로 허무하게 퇴장한 모 캐릭터) 때문이지만 안드레아에 대한 묘사도 한몫을 했다. 워킹데드 세계관을 좋아하는 동시에 좀 더 사실적인 캐릭터 묘사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래픽노블 버전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황금가지에서 양질의 번역으로 번역판을 내준 덕분에 15권까지는 정말 편하게 읽었는데, 이제 미드를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고 16권부터는 느리더라도 원서로 읽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15권의 대사를 적어 본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제 내 안에는 아무것도 안 남았어요. 아무것도. 난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것 같아요."
"잊었어요? 이제 사람들은 죽어도 죽지 않아요. 어때요. 다시 살아날 때가 된 것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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