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전태일, 분신자살 직전 (1970. 11. 13.)
여러분, 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박정희씨 영구집권의 총통시대가 오게 됩니다.
- 김대중, 제 7대 대통령 선거 장충단공원 유세에서 (1971. 4. 18)
더 이상 여러분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 박정희, 제 7대 대통령 선거 부산 유세에서 (1971. 4. 24.)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 김수환 추기경, 전국에 생중계된 성탄절 미사 강론 도중 (1971. 12. 24.)
나 개인은 조국 통일과 민족중흥의 제단 위에 이미 모든 것을 바친 지 오래입니다.
- 박정희, 10월 유신 선언에서 (1972. 10. 17.)
박 대통령의 이와 같은 행위는 이승만 독재 정권을 타도한 위대한 한국민의 손에 의해 반드시 실패하리라고 확신한다.
- 김대중, 유신헌법을 비판하며 (1972. 10. 18.)
두 분은 드디어 덴노헤이카(천황폐하), 고고헤이카(황후)가 되셨군요.
- 재미 언론인 문명자, 제 8대 대통령 취임식 후 육영수 여사에게 /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1972. 12. 27.)
주여, 어리석은 왕을 불쌍히 여기소서.
- 박형규 목사, 부활절 기도회 행사에서 배포한 전단지에 (1973. 4. 22.)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정보차장보 이철희가 김대중 납치에 반대하자 (1973. 8.)
도서관에 불이 났다!
- 서울대 학생회 간부, 서울대 문리대에서 학생들을 긴급 소집하며 (1973. 10. 2.)
※ 이 사건은 최초의 반유신 시위로 기록됨. 경찰의 방해를 피해 도서관에서 불이 났다고 학생들을 긴급소집 후 시위. 20명 구속, 23명은 제적, 18명은 퇴학, 56명은 무기정학 조치.
오늘의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 장준하,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선포하며 (1973. 12. 24.)
오늘 이후 맨 먼저 데모하는 대학부터 본보기로 폐교시켜라.
- 박정희, 긴급조치 4호 발표 후 중앙정보부장 신직수에게 (1974. 4. 3.)
이 나라 이 겨레 구원자 되신 님의 뜻 받들고자 여기 모였네.
- 경호실장 차지철이 작사한 <경호원가> 중 (1974)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이론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 문교부 장관 유기춘, 광주 교육자 회의에서 (1975. 1. 29.)
너 아직 고문이 덜 되었구나!
- 인혁당사건 담당 검사, 검찰조사 시 인혁당사건의 피고인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1975. 4.)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 서울대 농과대 축산과 4학년 김상진, 캠퍼스에서 할복자살 직전 (1975. 4. 11.)
법정이라고? 여긴 그저 오물들이 쌓여 있는 곳이다!
- 제임스 신부, 인혁당사건 재판정에서 판사가 정숙을 요구하자 (1975. 4. 30.)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 박정희, 육군 3사관학교 졸업식 훈시에서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을 비난하며 (1976. 8. 20.)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지라도 반공법에 걸린다.
- 리영희 교수 필화 사건 담당 검사, 재판정에서 중국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1977. 1. 27.)
국가존망의 어려운 시국에 국민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박정희, 법무부 연두 순시에서 (1977. 2. 4.)
야, 이놈아! 네가 판사냐!
- 이소선 여사(전태일 모친), 노동운동가 장기표의 재판에서 (1977. 7. 22.)
한국에는 한국식의 인권이 있다.
- 박정희, 카터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정치범 석방 요구에 대해 (1979. 6. 30.)
싸우면 모두 늑대가 되고 화해하면 다 양이 된다.
- 선우휘, 조선일보 사설에서 YH무역 사건에 대하여 신민당을 비판하며 (1979. 8. 28.)
나는 여기서 박정희 씨의 하야를 강력히 요구한다.
- 김영삼, YH 사건 후 박정희 정권 타도를 위한 범국민적 항쟁을 선언하며 (1979. 9. 10.)
신민당이 됐건, 학생이 됐건 탱크로 밀어 캄보디아에서처럼 2, 3백만 명만 죽이면 조용해집니다.
- 차지철, 부마 민주항쟁이 발생하자 박정희에게 (1979. 10.)
각하! 이 따위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 김재규, 궁정동 안가에서 차지철과 박정희를 암살하기 직전 (1979. 10. 26.)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박정희가 주님 앞에 섰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 기도 중 (1979.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