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작품인 설득은 로맨스 소설의 고전이기도 하다. 휴가 기간 내내 부지런히 읽고 취중에 잠시 후기를 남겨 본다.


주인공인 앤은 재정적 위기에 처했지만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속물적인 준남작 월터 엘리엇 경의 둘째 딸이다. 아름답고 기세등등한 첫째 딸 엘리자베스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막내 딸 메리 사이에서 그녀는 사색적이고 온순한 성격 덕에 가족에게는 무시를, 주변인들에게서는 사랑을 받는다.


8년 전 사랑하는 사람과 약혼을 했지만 가족의 반대와 친애하는 레이디 러셀의 설득으로 파혼을 하고 마침내 그 사람과 재회해 펼쳐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의 줄거리이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과 동일하게 제목의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다. 주변의 설득에 의해 사랑을 포기하고 8년 후, 그녀는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상황 자체는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레이디 러셀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고 -실은 몇 번 조언을 청하기 위해 만나려고 했지만 계속 불발된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사랑을 쟁취한다. 설득에서 가장 백미인 부분은 웬트워스가 앤의 대화를 엿들으며 편지를 쓰다가 몰래 쥐어주는 장면과 마침내 앤이 그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구체적으로 성격을 묘사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방식이 섬세하다. 특히 제독 부부에 대해 예의라고는 전혀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편지를 쓰던 메리가 제독의 호의를 받자마자 바로 편지 본문에 반영해 이보다 더 좋은 이웃은 없다며 가필하는 장면이 매우 재미있다. 권성징악적인 느낌의 에필로그도 마음에 든다.


직업병 탓에 이번에 시공사판을 읽으면서 계속 번역에 유의했는데 2부에서 특히 약간의 기복이 느껴진다. '그녀는 캠던 플레이스에 내려졌다', '그는 용서된 것만이 아니었다' 등의 문장을 예로 들 수 있겠다.


BBC 버전의 2007년작 영화도 보고 싶다.


Posted by Finrod
Reading Log/etc.2017. 9. 6. 13:51

언더우드 여사의 조선견문록(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 Or, Life in Korea)은 원서의 경우 저작권이 만료되어 무료로 읽을 수 있다.


바로 보기: https://archive.org/stream/fifteenyearsamon00undeiala#page/94/mode/2up

이북 다운로드: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Fifteen_Years_Among_the_Top_knots_Or_Lif.html?id=G6gPAAAAYAAJ


읽던 중에 한글 번역본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을 원문과 비교해 보았다.


대체로 조선 사람들은 어떤 잔치에 갔다 하면 그 자리에서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먹어 치운다고 봐야한다(게다가 옷소매 속이나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가득 음식을 넣고 간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그들은 잔칫날 잔뜩 먹으려고 며칠 전부터 미리 굶기도 한다. 내 생각으로는, 대체로 그들은 질보다는 양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선비가 방문했던 일본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의 말이 믿을 만한 것이라면, 일본 사람들은 미적인 감각만을 고도로 계발시켰으되, 손님에게 손바닥만한 잔 몇 개와 근사한 접시들을 늘어놓고 음식이라고는 쥐꼬리만큼 내어놓는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 잔칫날 먹을 음식들 곧 쌀밥이며, 국수며, 뜨거운 떡이며, 땅콩이며, 과일이며 바싹 구운 신선한 과자며, 매운 양념을 잔뜩 친 고기며, '김치' 따위를 기대하면서 굶고 있던 이 가련한 조선 사람은 참으로 비통해 할 수밖에 없다. 아, 잔칫날은 돌아왔건만, 현미경으로나 보일 찻잔 몇 개, 조선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음식(그중엔 틀림없이 생선회가 있었을 것이다) 몇 점이 놓인 손바닥만한 접시 몇 개, 그리고 나머지는 이성과 영혼의 잔치였으니! 다음날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빼빼한 이 사람은 언더우드씨에게 서글픈 목소리로 조선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는데 일본 사람들은 어째서 잘 사는지 그 까닭은 이제야 알겠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사람들은" 하더니 "하루에 백 원을 벌면 천 원어치를 먹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반대로 하루에 천 원을 벌어 백 원어치를 먹습니다"하고 말했다.


Now, when Koreans attend a feast, they expect to finish an incredible amount of food on the spot (nor is it altogether unusual, in addition, to carry away as much in their sleeves and hands as strength will permit). Sometimes they fast for several days previous in order to do full justice to the entertainment, and generally, I believe, quantity is considered of far more import than quality. Not so with the Japanese, among whom our teacher visited. If his word was to be believed, they had developed the æsthetic idea quite to the other extreme, and provided a few tiny cups and dishes of supposedly delicate and rare viands for their guests. So on this occasion to which I refer, it was almost pathetic, the poor Korean fasting to feast, with visions of quarts of rice and vermicelli soup, pounds of hot rice bread, nuts, fruits, fresh, dried and candied; meats with plenty of hot sauce, “kimchi,” or sauerkraut, etc., etc. Alack the day! A few microscopic cups of tea, a few tiny dishes of articles which knew not Korea (among them no doubt raw fish), and for the rest, a feast of reason and flow of soul. Next day, a wiser and a thinner man, he sadly told Mr. Underwood that he now understood why Japanese prospered, while Koreans grew poor. “Koreans,” said he, “earn a hundred cash a day and eat a thousand cash worth, while Japanese, on the contrary, earn a thousand cash a day and eat a hundred cash worth.”


'과일이며 바싹 구운 신선한 과자'는 '생과일, 건과일, 당과(달게 졸인 과일)'가 맞을 듯 하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빼빼한 이 사람'은 실은 일본인의 홀대(?)로 득도함과 동시에 전날보다 말랐다는 유머러스한 표현인데 번역이 다소 아쉽다.


Posted by Finrod
Reading Log/Romance2017. 9. 6. 11:38

2부 2권에서 포식자의 먹이 사냥법이 완결된다. 이번 권은 유난히 오탈자가 눈에 많이 띈다.


4권까지 읽은 소감은 스토리라인이 흥미롭고 서술이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19금 장면이 너무 과하다는 거다. 이건 무슨 야설 모음도 아니고 끊임없이 연달아 나오는데 나중엔 묘사 때문에 불쾌한 느낌까지 들어 이런 장면은 대충 건너뛰며 읽었다. 돌연변이 개체와의 잦은(ㅠㅠ) 성관계로 인해 유전자 변이가 발생해 짐승들의 이브가 되었다는 설정부터가 무리수가 아닌가...


도미니크가 납치된 젬마를 구출되는 장면에서 장문의 대사를 늘어놓아 실제로 저 대사를 말하면 몇 초나 걸릴지 스탑워치로 확인해 보니 약 15초다. 단신으로 용병들을 앞에 두고 1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장문의 대사와 함께 키스까지 하다니 여유심에 박수를 보낸다. 감흥 없는 매드사이언티스트의 정석을 연기한 슈타켈버그에게도 박수를. 남편과 자식이 사망한 후 부인이 작위를 물려받는다는 대사도 의문이다. 부인은 상속자가 미혼인 경우에 한해 호칭 유지만 가능하다. 부인이 작위를 물려받은 사례가 있는지 찾아 보았지만 소득이 없다.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Courtesy_titles_in_the_United_Kingdom#Widows


If a prince or peer dies, his wife's style does not change unless the new peer is a married man (or a woman, if the succession permits); traditionally the widowed peeress puts "Dowager" in her style, i.e. "The Most Hon. The Marchioness of London" becomes "The Most Hon. The Dowager Marchioness of London."


If a widowed peeress's son predeceases her, her daughter-in-law does not use the title of Dowager, but is styled, e.g. "The Most Hon. Mary, Marchioness of London", until her mother-in-law dies, at which point she may use the title of "Dowager Marchioness". In more recent times, some widows choose to be styled with their Christian names, instead of as Dowager, e.g. "Olave, Lady Baden-Powell" ("The Lady Olave Baden-Powell" would incorrectly imply she was the daughter of a duke, marquess or earl).


주인공 젬마는 복수를 이야기했지만 피폐함만을 위해 설계된 소설 내 장치에 희생된 채 끝까지 수동적인 캐릭터로 머물렀다. 사실상 말로만 능동적인 그녀가 한 것은 소극적으로 분란의 씨앗을 뿌리는 것뿐, 대부분의 중요한 전개는 남성 캐릭터에 의해 이루어지고 구원자 역시 남성 캐릭터의 역할이다. 그나마 막판에 활약을 하지만 역시나 구원받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행동이 잘 공감되지 않았는데 후반부에 갑자기 임신하고 싶다며 칼을 들고 피임 기구를 빼내는 장면에서 완전히 포기했다. 이러한 젬마를 주변에서는 잔 다르크와 비교하며 칭송한다.


휴가를 핑계로 책을 잔뜩 쟁였는데 시작부터 치명치명 열매를 먹은 피폐작을 읽어서 진도가 영 느리다. 다음 책은 좀 몰랑몰랑한 책으로 골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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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inrod